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성흔/선수 시절 (문단 편집) == 두산 베어스 2기(2013-2016) == 냉정히 말해 홍성흔의 두산으로의 리턴은 본인으로서나, 팀에게나, 팬들에게나 큰 실수였다고 보면 된다. --[[아라이 타카히로]] 새드엔딩 버전-- 성적으로만 놓고 봐도, 롯데에서는 마지막 시즌인 2012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지명타자 부문 [[KBO 골든글러브]]를 싹쓸이 했던 것에 비해~~근데 2010년을 빼면 나머지 시즌들은 모두 [[골든글러브/역대 수상 논란|논란]]이 많은 수상이라는게 함정~~ 두산으로 돌아온 뒤엔 아무런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 그나마 2014년 시즌은 ~~송일수 종신감독 만들기 위한 비갈임무~~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 팀 성적이 바닥이었던지라 별 의미가 없었고, 두산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2015년과 2016년 시즌은 홍성흔의 활약과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롯데가 홍성흔에게 3년 계약을 제시한 이유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점점 노쇠화가 뚜렷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홍성흔이 두산으로 돌아온 뒤 그나마 제 몫을 한 시즌이 2013~2014년 첫 두 시즌뿐이었고, 나머지 두 시즌은 먹튀급 성적을 찍은 것을 감안한다면 롯데의 선택이 옳았던 셈. 결국 부전드임을 자신이 입증한 셈이다.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했다. 구단은 최종 3년 25억 원(보장 22억 원, 옵션 3억 원)을 제시한 반면, 홍성흔은 4년에 34억 원을 원하여 협상이 결렬. 홍성흔이 4번타자로 분발하긴 했으나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고, 나이를 생각해보면 4년 계약 만료시 2016시즌 홍성흔은 40세가 된다. 거기다 [[정현욱]]을 영입한 LG, [[김주찬]]을 영입한 KIA 등은 물론이고 선수 영입이 없었던 한화나 SK, 삼성 등의 구단도 시장 시작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모두 FA 영입 종료를 사실상 선언했고 NC 역시 이호준을 영입해서 홍성흔의 자리가 마땅찮아졌다. 지난 시즌 무리한 넥센은 당연히 영입할 리가 없고 막상 시장에는 나왔는데 갈 곳은 하필 '''[[두산 베어스|두산]]'''밖에 없는 상황. 롯데 팬들은 홍성흔이 두산에 가든 다시 돌아와서 헐값으로 계약하든 차라리 잘 됐다는 의견인 반면, 두산 팬들은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211180100118830009771&servicedate=20121118|김태룡 단장이 홍성흔 영입에 뛰어든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4년간 총액 31억원의 계약으로 두산에 복귀하였다. 김진욱 감독은 타선의 구심점이 될 선수가 필요했다고 하면서, 홍성흔을 '''주장'''에 임명하겠다 밝혔다. ~~[[김동주(타자)|김동주]]는 어쩌고...~~[* 다만 김동주가 은퇴하면서 팀케미 관련 구설수를 남기면서, 이 영입은 재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팀의 구심점을 다지기 위해서는 필요했던 선택이였다는 평이 대다수. 두산 역사를 보아도 항명 파동을 일으켰지만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던 불사조 [[박철순]]이나, 여러 팀을 전전했지만 두산에서 주장 완장을 찬 [[임재철]]을 보면 이해가 쉽다.] 홍성흔의 보상 선수로는 [[김승회]]가 지명되었으며, 김승회는 2016년 [[윤길현]]의 보상선수로 SK로 간 뒤에 2017년 두산으로 다시 돌아와 2019년에서야 우승반지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윤길현은 롯데의 금지어가 되었다--[* 홍성흔이 4년 30억으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는데 윤길현이 4년 38억으로 커리어로우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9년 윤길현이 방출되고 홍성흔은 부전드 그 자체가 되었으며 김승회는 우승반지를 끼우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